한국사기, 1화(프롤로그)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란? 한민족 아래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한국사기"는 설민석 선생님께서 요즘 한창 하고 있는, 어쩌다어른 속 역사 강의와 맞물리는
"한국 통사"를 주제로 한 KBS의 팩츄얼 드라마 후속작이다.
팩츄얼 드라마란...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을 해서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짬뽕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지난 "임진왜란 1592"도 인상 깊게 봤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챙겨 볼 생각이다.
1편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예고해주는 프롤로그 느낌.
한국 통사 탐방은 중국 땅에서 시작되는데, 중국에서 표면에 사람의 얼굴이 조각된 청동도끼 거푸집, 유물이 발견된다.
찢어진 눈매에 튀어나온 광대뼈, 상투까지 튼 = 고조선인의 특징
당시 고조선인은 중국에서 출토되는 청동검과 다른, 비파형 청동검을 사용했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 경 중국 동부쪽에 자리잡은 고조선 =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또 하나의 국가, 고도의 철제 기술을 가졌던 "부여". (이 당시 철기 기술의 숙련도 = 강력한 국력을 뜻함)
부여 사람들도 상투를 튼 모습을 보면... 이들도 우리의 조상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며
(이 가면은 고조선이 부여로 이어진다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부여의 시조 동명왕. 이는 고구려의 시조로 널리 알려진 "주몽"의 칭호와 같다.
그러나, 둘은 다른 인물이라고 한다.
정약용은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 에서, "고구려가 부여의 건국설화를 표절했다." 고 저술했다.
주몽 신화
<주몽 =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부여의 말.
알에서 깨어난 주몽이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위협을 느낀 기득권 층은 주몽을 죽이려 하고 이를 눈치 채고 도망가던 주몽은 큰 강에서 막힌다. 주몽이 한탄하며 강물을 탁 치자, 자라와 물고기들이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서 무사히 도망을 칠 수 있었고주몽은 살아 남아 고구려를 건국한다.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가 조상의 나라인 것은, 유물 등을 봤을 때 역사적인 근거가 탄탄하다.
그렇기 때문에 추론이 가능한 것은...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부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조상의 나라로서 부여의 건국설화를 차용한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단순히 건국 설화 이외에도 부여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은 다양한 생활 양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들 역시 흰 옷을 즐겨 입고, 경사가 있을 때는 술과 춤을 즐겼다.
그렇다면, 부여인과 고조선인의 조상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이제 구석기 인들에 대한 소개로 이어진다.
짐승을 사냥하거나, 식물의 열매와 뿌리를 먹고 살았던 구석기 인들. 그들은 주먹도끼와 같은 뗀석기를 주로 이용했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하면서, 생존을 위한 진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신석기 시대때는 비록 문자는 없었지만, 그들만의 기록(벽화, 암각화)을 남기기도 한다.
신석기 시대부터 물물교환 및 교역이 시작되는데,
이와 함께 역사상 위대한 혁명이라고 까지 일컬어지는 "농경 생활"이 시작된다.
정착 생활을 하고, 사유 재산이 생김에 따라 종교가 따라서 탄생하게 된다.
노동력은 소중한 것이므로 공동체 안에서 죽는 이들에 대한 장례 문화가 발달. (아마 열심히 일해야 좋은데 간다 이런거겠지)
그리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종교는 "요청"됐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난 신의 목소리를 듣기 때문에, 너희들과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나의 말을 듣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다르고, 위대한 신의 목소리를 듣는 지배자를 위한 장례 문화로 "고인돌" 역시 발달하게 된다.
농경 생활로 인해 씨족 사회가 형성되고, 이는 점점 규모가 켜지고 결집하여 국가로 발전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의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다.
진나라와 한나라라는 거대 통일국가를 세운 대륙으로부터, 고조선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중계무역으로 이득을 보고 있던 고조선에, 한 무제는 사신을 보내 조공을 요구, 협박한다.
마지막 고조선의 왕인 우거왕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한나라로 돌아가던 사신은, 그냥 가면 왕에게 소득없이 돌아온것에 대한 문책이 두려워 배웅 나온 고조선의 신하를 살해한다.
이제 우거왕은 문제에 봉착함. 이를 문제 삼고 거대 제국과 전쟁을 할 것이냐, 묵인하고 속국임을 인정할 것이냐?
전쟁을 택한 우거왕. 그 사신(섭하)이 부임한 요동 지역을 기습 공격, 결국 살해한다.
당연히 한 무제는 5만 병사를 일으켜 고조선을 침략한다.
그러나... 고조선 군은 지형을 활용한 뛰어난 전략으로 한나라 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다.
이런 선전에도 불구하고 수적 열세 때문에 한나라 군에 왕검성은 포위당해버림.
VS
여기서... 뻔한 한민족의 레파토리! 바로 "국론 분열". 한나라에 투항하느냐? 결사항전하느냐?
왕은 후자를 선택했고 계속해서 항전을 이어가던 고조선...
결국 반발심이 극에 달하여, 투항을 지지하는 세력은 왕을 암살하고 한나라 쪽으로 도망을 침.
이렇게 전쟁이 끝나는 듯 싶었는데, 결사항전을 주장하던 재상 "성기"를 주축으로
고조선은 또 다시 단합하여 항전을 계속 이어나간다.
그러나 성기는, 한나라 측 좌장군의 회유에 넘어간 우거왕의 아들 등에 의해서...암살당하고 만다.
(아마... 왕권 어쩌고 했을 것이다. 이대로 계속가면 우거왕 아들 너도 무사하지 못한다... 성기가 왕이 될 것이라는 둥)
결국, 왕검성은 함락 당하고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은 멸망한다.
이런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한민족은 중국의 민족과는 다르다!"
중국과 다른 나라. 조선. 즉 "우리"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
중국과 부딪히는, 이런 역사 역시, 비슷하게 되풀이 된다. 고구려로 가보자.
고구려 영양왕 때 수나라 문제가 조공을 요구, 협박을 한다.
영양왕도 전쟁을 선택하고, 당시 수나라 황제였던 "문제"는 30만 대군을 일으키지만
고구려의 격렬한 항전에 막혀, 정벌은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문제를 뒤이어 그 유명한... 수 "양제"가 왕위를 이어받았고 그는 113만 군을 일으켜 고구려의 요동성으로 진격한다.
고구려는 요동성을 성공적으로 방어한다. 이유는 독특한 구조 때문. (여기서도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수 양제는 장수들을 갈구기 시작하고, 평양성으로 우회 공격을 했으나, 이미 사기가 꺾인것일까.
평양성 함락에도 또 실패하고 만다. 결국엔 원정을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여기서 유명한 우중문 vs 을지문덕, "살수대첩"발발! 끝내 살아돌아간 수나라 군은 2,700명에 불과했다는 대기록을 거둔다.
이후에도 수나라는 고구려 정벌을 계속 시도했지만 번번히 고구려에 패하였고, 결국 수 양제는 민심을 잃고 암살 당한다.
수 양제 한줄평. 리더로서, 역사에 어떻게 이름을 남길 것인가. 중요한 문제다.
이렇게 이름을 남긴 리더도 있었고, 아예 사라진 리더도 있었고, 훌륭하게 기록된 리더도 있었다.
진정한 리더란 누구인가?
이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시대 이야기로 넘어가서 각 나라의 전성기 리더, 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훌륭한 리더의 조건, "큰 그림을 그리는 냉철한 눈"을 가진 사람. 백제 13대 왕 근초고왕.
고구려 16대 왕 고국원왕은 백제를 침략한다.
근데 선제 공격을 한, 북방의 강국인 고구려가 오히려 백제에게 패배함.
이유는 벌이 무서워 도망쳤던 왕의 마부, 사기가 고구려군의 약점을 알려줬기 때문.
근데 왜 사기는 이런 행동을 했을까?
내용 상 생략됐지만, 그만큼 백제가 그 당시 살기 좋은 나라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왕의 말 발굽을 훼손하여 벌을 받을 것이 무섭긴 했으나, 그는 다시 백제로 돌아가서 살고 싶었고
고구려의 약점을 찾아 백제에 이를 고하면 용서해줄 것이라는, 왕의 자비로움에 대한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사소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이 백성 하나의 마음과 행동 덕분에
백제는 고구려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었고
이는 백제가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는,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된다.
근초고왕이 즉위한 직수, 그가 생각한 그의 과업은...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고구려로부터 살아남아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맞춰 강성한 백제를 만드는 것.
그의 해답은... "무역"과 "외교"였다. 국제 정세를 활용하여 내실을 다지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던 근초고왕.
왜에게 선진 문물을 주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왜를 활용하여 신라를 견제한다.
그리고 그 틈에 가야를 정복하는데, 이 당시 가야는 철 생산량이 풍부하여 철기 기술이 매우 발달한 국가였다.
근초고왕은 전략적으로 철기 기술을 흡수하여 백제의 국력을 강화시킨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영산강 하류 부근의 왜와 중국을 오가는 해상 무역 중심지, "신미제국"까지 정벌.
중국 대륙과 왜와의 중계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한다.
이렇게 다져진 내실, 국력으로 한반도 이남을 정리한 백제.
이제 고구려를 선제 공격하기 시작하고, 결국 고국원왕을 살해하는데 성공하며...
꿈에 그리던 교역 루트를 완성, 한반도 최강국에 등극한다!
이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이야기로...
아버지(고국양왕)와의 일문일답.
Q: 어떤 왕이 되고 싶으냐? A: 전쟁에서 이기는 왕이 되고 싶습니다.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왕이 되어야 한다!
"백성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신라의 문무왕 이야기로 바로 넘어 간다. (광개토대왕 얘기는 유명해서 짧게 후려친 듯 하다.)
진덕여왕의 시(대당대평송)를 당 황제에 마치기 위해 24세, 어릴 때부터 사신으로 직접 가야했던 문무왕.
이 때부터 문무왕은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비록 지금은 머리를 조아리지만 언젠간...언젠간...!
문무왕 즉위 후, 어릴 때부터 직접적으로 당과 대면해왔던 그 였기에 당나라와의 외교력이 우수했다.
그렇게 신라는 당나라와 전쟁 계약을 체결한다.
수나라때부터의 트라우마도 있는 당나라에게 고구려라는 존재는 골치 아픈 국가다.
그러니 우리가 대신 싸워주고 견제해줄테니 병력을 지원해주고, 우리가 이기면 대동강 이남의 땅은 우리에게 달라.
당나라도 콜!!! 이렇게 나당연합군은 고구려와 전쟁을 벌인다.
때마침... 타이밍도 좋게 연개소문이 죽고 국론이 분열돼있던 고구려는 결국 신라에게 패하고, 멸망한다.
역사란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그렇게 강대국이었던 고구려가 반도의 조그만 나라에게 이렇게 쉽게 멸하다니.
이제 해피엔딩!!! 인줄 알았으나... 고구려가 사라진 당나라는 이제 무서울 것이 없었다.
신라와의 약속은 지킬 필요가 없었고, 고구려 영토와 백제 영토까지 막대한 이득을 챙긴다.
신라는 약속받았던 고구려, 백제 땅을 받지 못하고... 주둔하는 당나라 군대를 입히고 먹이느라 바쁘다.
이때부터 신라 30대 왕 문무왕은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하고
2년 후, 신라의 선제 공격으로 나당 전쟁이 발발하며, 전쟁은 6년간 지속된다.
신라는 그간 준비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압록강 쪽에서 당나라와 싸우면서, 백제 지역땅을 점령함.
여기에서 우리는 문무왕의 여러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거대 제국 당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실행력과 리더쉽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초반에는 이기는가 싶더니 결국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최종 전면전에서 대패한 신라는
당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며 용서를 구하는데, 이는 시간을 끌기 위한 문무왕의 계책이었다.
이렇게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나라의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문무왕.
문무왕은 이후에도 곳곳에 성벽을 쌓고 새로운 무기, 새로운 전법을 연구하는 등 착실하게 전쟁 준비를 지속한다.
여기에 당나라의 약탈로 고통을 받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을 품는 아량까지.
고구려의 왕족 '안승'을 인정해줌으로써 많은 고구려/백제 유민들이 신라에 투항하였고
이렇게 결집한 힘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당나라와 전쟁을 일으키고, 매소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그 다음 해, 기벌포 해전에서는 22연승을 거두기까지 한다.
나당 전쟁은 결국 신라의 승리로 끝나고, 대동강 이남의 신라의 지배권을 인정받으면서 통일 신라가 탄생한다.
진정한 의미의 한반도, 한민족의 탄생. 오늘 날 "우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돌이켜보자, 국가는 어떠한 투쟁을 통해 이어져 왔는가.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