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이야기/영화 감상문

프로메테우스 - 얻고자 한 진리는 그곳에 없었지만, 우리에겐 믿음이 있다.

진토커 2017. 2. 13. 16:31

프로메테우스 - 얻고자 한 진리는 그곳에 없었지만, 우리에겐 믿음이 있다.

진리를 찾기 위한 믿음과 상상력

 오래전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질문. "우리의 기원은 어디이며, 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흔히 '진리'라고 부르는 것 같다. 진리는 사회의 종교, 과학, 철학, 신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수, 다윈 등 다양한 인물들에 의해서 설명되어왔다. 어떤 것이 진리인가? 과학에서 설명하는 우주의 시작이 빅뱅이라는 것은 단지 이론일 뿐이고, 기독교나 다윈이 설명하는 창조론, 지화론 물론 모두 하나의 가설, 이론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것도 명확하게 그것이 진리임을 알 수는 없는 것 같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양한 가설과 이론들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춰 믿을 수 밖에 없다. 이런 믿음은 너무도 강성해서, 사람을 배타적으로 만들고 다른 믿음을 배척하는 갈등이 발생하고, 전쟁으로까지 발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믿을 수 밖에 없다. "우리의 기원이 어디이며, 왜,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에 대한 대답, 즉 진리는 그 자체로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한다는 특성을 주요 조건으로 꼽지만 아직까지 그런 것은 없기 때문에, 논리적 공백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진리는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채 믿을 수 밖에 없다. 단순히 '모른다' 혹은 '진리 같은 것은 없다', '진리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라고 단정을 지어버리고 살아가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나 허무하고, 고통스럽다는 것도 무언갈 믿게 만드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믿음에는 논리적 공백이 필수로 수반되지만, 그 사이에 우리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인 '상상력'을 발휘해 공백을 메워나간다. 창조론이나 진화론 모두 상상력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에는 진화론이 자연 관찰, 연구를 통해 증명됐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더 타당하며, 그렇기 때문에 진리에 더 가깝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과학은 아직도 많은 부분들을 설명할 수 없다. 언젠가 기술이 발달하면 밝혀질 것이니 진화론이 옳다는 주장 역시 상상력에 기반한 믿음일 뿐이다. 상상력에 기반한 믿음은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과학이라는 모습으로, 누군가에게는 성경, 코란, 불경 등... 종교라는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과정에서 생겨나는 고통은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힌트를 주는 듯 하다.

 영화 '프로메테우스'는 현실에서 발현되는 '믿음'에 대한 두 가지의 모습을 적절하게 섞어서 2시간의 러닝타임 간 보여주고 있다. 비행에서 깨어난 시점은 "크리스마스"였고,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쇼 박사는 기독교 신자로서 항상 십자가 목걸이를 지니고 다닌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 중요한 두 장면.

 인공지능 로봇인 데이빗은 동면 상태인 쇼 박사의 꿈에 접속해 어렸을 적 아버지와 쇼 박사가 나눴던 대화를 듣는다. 그리고 성장한 쇼 박사는 왜 이런 우주 탐사를 떠나게 됐는지에 대한 동기를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동료들에게 얘기한다. 천국과 낙원이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믿기로 했기 때문이며, 고대 벽화 속에서 발견했던 거인들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유 역시 그렇게 믿어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쇼 박사 아버지의 믿음은 인간의 상상력에서 기반한 종교적인 믿음의 전형이고, 어른이 된 쇼 박사의 믿음은 수 년간 과학적인 관찰과 연구로 얻어낸 다양한 증거에 상상력을 더한 과학적인 믿음의 전형이다.

 사람들은 흔히 창조론 vs 진화론으로 양분화하여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내가 봤을땐 그냥 취향 혹은 무엇이 진리이길 바라느냐의 문제일 뿐이지 서로 싸우는 것은 소모적인 것 같다. 둘은 진짜 완전 상반되는, 서로 다른 것인가? 영화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잘 생각해보면 쇼 박사는 과학자인데 기독교 신자다. 기독교 신자로써 신, 혹은 누군가가 우릴 창조했다고 믿으면서 과학으로 그것을 증명하고 설명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인간의 절대적인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의 논리적 공백을 과학적 방법론, 이성으로 채우려는 노력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다. 감독은 이 핵심 소재를 과학과 종교가 혼재되있는 인물 쇼 박사를 중심으로 프로메테우스 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로 아주 훌륭하게 풀어 냈다.

 이 글을 보는 창조론자, 진화론자는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두 가지가 공존한다니? 우리가 신이든, 아니면 영화 속에서의 엔지니어든 누구로부터 창조된 것인지 아니면 진짜 우연히 진화를 거쳐 지금에 이른 것인지... 무엇이 맞고 틀린지 논쟁을 하려는 의도는 없고, 영화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영화 속에서 우리 인류는 무언갈 '창조'해냈다. 바로 "데이빗"이다. 데이빗은 스스로 학습할 수 있고, 프로그래밍하는 주인에게도 충성하며 영혼, 감정 등이 없을 뿐 모든 면에서 인간과 동일하면서도 우월한, 인류가 꿈꾸는 완벽한 인공지능 로봇이다. 데이빗은 원래부터 이렇게 완벽했을까? 지금도 뉴스에선 다양한 인공지능 로봇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조악하다. 하지만 인류는 앞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데이빗과 같은 로봇을 미래에는 완성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보면 로봇도 '진화'를 거쳐 완벽하다고 여겨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화 중간 중간 데이빗이 심취하여 반복하는 영화 대사나, 사람과 주고받는 대화에서 본인 존재에 대한 스스로의 성찰을 엿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창조물로서의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찾고, 스스로 찾아낸 이성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성찰하는 모습과 굉장히 유사하다. 데이빗이 인간에 의해 창조되고 진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듯이, 인간 역시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고 스스로 진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과정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정교하고, 신비롭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려는 것 같다.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등장한 엔지니어는 이상한 액체를 마시더니 분해되어 유전자, DNA가 새롭게 조합되면서 세포 분열을 시작한다. 이것은 엔지니어가 인류의 기원임을 암시하는데, 뒤에 엔지니어의 잘려진 머리를 조사하면서 엔지니어의 유전자와 인간의 유전자가 동일하다는 것을 못박기까지 한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의 암시와, 뒤에서 발견된 인간과 엔지니어의 DNA 일치라는 설정은... 이 영화가 재미를 유발하는 핵심 설정으로 상상력에서 기반한 (유사)과학적인 믿음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엔지니어(외계인)에 의해 창조되고 진화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실제로 엔지니어들의 흔적을 관찰하고, DNA가 일치하다는 것도 발견한 찰리 할러웨이는 드디어 진리를 발견한 것 같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인 쇼 에겐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논리적인 공백이 남아 있었다. 믿음과 논리적 공백,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상상력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럼 엔지니어들은 누가 만들었는데?" 




얻고자 한 진리는 그곳에 없었지만, 우리에겐 믿음이 있다.

 인간의 믿음과 상상력 끝에서 만나게 될것은 무엇일까? 진리를 얻을 수 있을까? 영화는 프로메테우스 호에 탑승한 17명의 승무원들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이런 질문에 대해서, 신이냐? 자연의 우연이냐? 두 가지 외에 또 다른 믿음과 상상력을 아주 우울하지만, 명쾌하게 보여준다. 바로 엔지니어, 즉 외계인이다.

 승무원들은 2년간의 잠에서 깨어난 후, 크리스마스에 아주 다양한 것들을 발견한다. 고대 유적으로부터 연구와 추적을 통해 발견한 한 행성. 그 행성에서 발견한 건축물. 통로에서의 문자와 그 문자를 통해 확인한 홀로그램 녹화 영상. 홀로그램 영상을 따라가면서 발견한 엔지니어의 시체. 시체를 넘어 다다른 길에서 확인한 인간 얼굴의 모습을 띈 구조물(포스터에 등장한). 그 공간 안에 있던 정체불명의 수 많은 원통들. 그 원통에서 흘러나오는 까만 유기체. 그 유기체를 먹거나 접촉한 인간/생명체의 괴이한 변형과 죽음. 불임인 주인공의 잉태. 그 뱃속에서 꺼낸 괴생명채. 엔지니어들이 지구를 관찰하고 있었다는 흔적. 건축물은 하나의 우주선이었으며 지구를 관찰한 이유는 지구로 향하기 위함이었다는 것. 우주선의 조정석으로 추정되는 공간에서 발견한, 잠들어 있는 한 엔지니어.

 인간은 마침내 그토록 궁금해하던 자신의 창조주, 엔지니어와 조우했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던 데이빗이 한 말을 듣자마자 엔지니어는 무슨 이유에선지 격분하여 모두를 죽여버린다. 데이빗은 웨이랜드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긴거였을까? 주인인 웨이랜드의 프로그래밍대로였다면 아마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엔지니어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자신들이 만들었고, 검은 유기체로 몰살하려 했던 인간들이 이곳까지 찾아온 것에 잠시 놀랬다가, 다시 목적을 상기하여 죽여버린 것으로 이해된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없앤다. 결국 웨이랜드 회장의 마지막 말처럼 인류는 얻은게 없었다. (There's... Nothing...)

 영화의 내용을 기반으로 결말을 단정지어 보자면, 인류의 기원은 엔지니어이며 인간을 만든 이유는 생체 무기(에이리언)를 만들기 위한 숙주로 쓰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류 탄생의 비밀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 상상을 하든지, 그 끝은 공허함과 허무함으로 끝맺어지는것 같다. 과학적 상상의 끝은 아직은 '우연'과 '확률'이다. 어쩌다보니 진화를 해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영화적 상상의 끝은 외계인들이 에이리언의 숙주로 삼기 위해 지구라는 땅을 잘 골라서 씨를 뿌리고 잘 성장하고 번성하자 수확하러 온... 농작물일 뿐이었다. 이리도 허무할 수가 없다. 

 종교가 이성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중세 이후 지금까지도 강력한 지지와 힘을 가질수 있는 원인은 그 믿음과 상상의 끝이 공허와 허무 보다는 오히려 경이로움, 신비로움에 가깝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부분에 쇼가 데이빗을 수습해가면서 나눈 대화를 보면, 인간이 로봇과 다른 점, 우위에 설 수 있는 이유를 보여줌으로써 종교적인 믿음과 상상력의 강력함은 감독 역시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 하다. 비록 진리를 얻기 위해 도착한 그곳에 기대했던 진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인간에게는 로봇에게 없는 믿음이 있었다.




엔지니어가 만들고자 했던 생체무기는 에이리언?

 검은 유기체에 접촉한 찰리 박사와의 성 관계를 통해, 엘리자베스 쇼 박사의 뱃속에서 나온 괴생명체는 살아남은 마지막 엔지니어에게 들러붙어 에어리언처럼 보이는 또 다른 괴생명체로 다시 태어난다. 바로 이것이 엔지니어들이 만들고자 했던 생체무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에어리언을 보진 못했지만, 프로메테우스가 에어리언의 프리퀄이라는 점은 내가 이해한 바로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그런데~ 감독과 제작진은 프리퀄이 아니라 다른 작품이라고 이미 밝혔기 때문에, 프리퀄은 아니지만... 비슷한 세계관과 상상력이 반영된 새로운 작품 정도로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어찌됐든 이 모든 우주관, 세계관을 만들어낸 상상력은 정말 놀랍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SF는 단순히 오락을 목적으로 한 컨텐츠가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 프로메테우스의 감독인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에어리언1을 한번 봐야겠다. 그리고 향후 개봉될 "에이리언:커버넌트(Alien: Covenant)"도 매우 기대가 된다. 꼭 영화관에서 관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