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이야기/영화 감상문

덩케르크, 전쟁은 인간성의 거울.

진토커 2017. 7. 29. 02:26

[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간만에 영화 감상평, 덩케르크 DUNKIRK

[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1. 같은 공간/사건 ↔ 다른 시간/경험

 영화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덩케르크"라는 1개의 큰 공간으로 시작해서 [잔교], [바다 위], [공중] 3가지 공간으로 분리하고 각각의 공간에서 인물들이 겪는 사건으로 1개의 사건을 다양화했고, 뛰어난 음악과 과장 없이 묘사한 폭격, 전투 장면들은 관객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 공간을 구분하면서, 공간 이름 밑에 나오는 '시간'은 처음엔 뭔가 싶었지만 보면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각각의 공간마다 등장 인물들이 겪는 "체감시간"이며 각각의 공간은 육군, 해군, 공군의 역할로 나눴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살지만, 각각의 존재들은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는다. 그리곤 그 자신의 세계관에 갇혀 타인의 세계관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듯 하다. 이것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잔교에서는 독일군의 진격에 두려움을 느끼며 공군의 도움을 절실히 바란다. 영화의 말미에서 한 군인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공군 너희가 한게 뭐 있어"

 공군 조종사는 적군기를 추격했을 뿐이고, 바다 위의 민간인들은 1명의 희생이 있었지만 무사히 많은 병사들을 구해줬을 뿐이며, 잔교에서 남은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을 뿐이다. 각자의 시간에서 각자의 경험은 모두가 엮여있는 1개의 공간이나 사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각의 세계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세계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감독은 3개의 공간을 별도로 보여주면서도, 중간중간 일부 겹치는 씬들을 친절하게 넣어주면서 "이건 모두 1가지 사건이야"라고 말해주는 듯 싶었다. 그리고 1가지 사건을 동시에 경험하지만 각자의 체감시간은 공군 조종사에게는 1시간, 바다 위에선 1일, 잔교에서는 1주일로 표현되는데 이 차이의 근거는 무엇일까?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가만히 편하게 보내는 3분과 링 위에서 복서의 3분은 분명 차이가 있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확실히 각자가 느끼는 삶의 체감 시간과 고통, 삶의 난이도는 서로가 비례하는 듯 하다.


2. 될놈될? 주인공은 없다.

 1개의 공간, 3가지 시간 속 다양한 인물들이 균등하게 등장한다. 이 영화에 주인공은 없다. 이런 구성을 옴니버스 구성이라고 하나? 조금 간단히 하면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살려준 자, 희생한 자, 살아 남은 자.

 살려준 자 - 공군도 어떻게 보면 희생을 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명령에 의해 전투에 나선 한 명의 군인이었다.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여 적군기를 성공적으로 격추시키며 안전하게 철수 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결국 공군은 바다 위의 인물들도 잔교의 인물들도 모두 살려줬다. 기름도 없어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서 모두를 구원해준 후, 낙하산으로 탈출하여 구조선을 같이 탔으면 될 것을 굳이 착륙하여 비행기를 스스로 불태우고 독일군에게 자발적으로 잡히는 마지막 모습은 슈퍼맨, 배트맨 같은 영웅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희생한 자 - 그런 점에서 어떤 명령도 없이 자발적으로 전쟁터로 배를 몰고 간 바다 위의 인물들은 1명의 소년을 희생함으로써 수 많은 인명을 구했다. 그 소년은 선장의 아들도 아니라 잠깐 도와주러 왔던 아들의 친구였을 뿐이었다. 사고였지만 절묘하게도 아군 군인에 의해 죽었다. 이 부분도 생각할 거리가 많다. 큰 일을 하고 지역 신문에 이름을 싣기 위한 소년의 행동. 이것은 이타적인가 이기적인가? 의도는 이기적이지만 결과는 이타적이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지는 개인마다 다르겠다. 어찌됐든 바다 위의 그들은 희생을 통해 많은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다. 

 살아 남은 자 - 잔교 위에 남은 병사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떻게든 몰래, 다소 부정한 방법으로 구조선을 타려는 시도부터 좌초된 어선에 모여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에서 인간에게 "생존"이란 무엇인가? 생존을 위한 이기성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가? 를 생각하게 해준다. 어선 안에서 물이 차올라 배가 뜨길 기다리는 상황에선 모두가 안정적이었지만 독일군의 총알이 한 두발 날라오면서 상황은 극한으로 치닿는다. 내내 아무말 없다가 자신이 죽을 것 같으니 말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독일군 스파이로 몰아붙이고, 구조선에 몰래 타려고 했던 것을 목격한 것으로 딴지를 거는 것이다. 말이 없던 병사는 동맹인 프랑스군으로 밝혀졌다. 빗발치는 총알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배를 빨리 띄우기 위해선 배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영국군은 자신들을 "영국군", "같은 부대"라는 공통점을 들먹이며 프랑스군 병사에게 밖으로 나갈 것을 강요한다. 그러자 영화 포스터 속의 영국군 병사는 그도 같은 연합군인데 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함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 역시, 다수와 "같은 부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프랑스군 병사 다음으로 희생할 것을 강요받는다. 다수의 생존을 위해 다수는 "다름"을 빌미로 소수를 만들어 희생을 강요한다.

 생존은 본능이다. 그리고 그 본능은 상황이 더 악화될수록 "인간은 모두 존엄하다"는 모든 인류가 합의했다고 믿고 있는 보편 명제를 멋대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다수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다수와 다른) 소수는 존엄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희생이 불가피하다)." 자원이나 환경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누군가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은 정말 어쩔 수 없는 필연인 듯 하다. 멋대로 해석했다기 보다는 사실 인간 모두가 존엄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허구일수도 있겠다.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유한하기 때문에, 꼭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위와 같은 문제는 발생한다. 문제의 본질은 인간이 존엄한지 아닌지를 떠나, 결국은 누군가의 희생이 필수적이라면 "누가 희생해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누가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것이다. 인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도 자유민주주의, 다수결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상정해놓고 있는 것 같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같은" 영국군이지만 "다른" 부대 소속인,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중간자인 포스터 속 인물은 치열한 사투 끝에 생존에 성공한다. 같은 사건 속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살아 남은 자가 주인공일까? 모두를 살려내고 장렬히 적군에게 잡혀가는 살려준 자가 주인공일까? 구조를 위해 자발적으로 전쟁터로 뛰어들어 희생한 자가 주인공일까?

 쉽게 사용하는 말 중에 "될놈될"이라는 말이 있다.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타 스토리에서 웬만하면 죽지 않는 주인공은 흔한 될 놈이다. 포스터 속의 군인은 그 전쟁 통에서 결국 살아남았다. 살아 남았고 포스터에도 혼자 떡 등장하니 나름 성공한 인생이며, 주인공이자 될 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선장 역시 많은 군인들을 구해냈다. 이것 역시 의미있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이들은 처음부터 "될 놈"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일까? 그들 스스로 치열하게 노력하고, 경쟁하고, 노련한 키질로 적군의 폭격을 피해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 원인을 전부 나 자신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자신이 운이 좋아서, 혹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이룬 성공의 귀인을 모조리 자신에게 돌리는 착각을 쉽게 하는 것 같다.

 덩케르크 작전 시에는 안개가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공군이 뭘 하는지 대부분 잘 몰랐다고들 한다. 살아 남은 자가 있다면 살려준 자, 희생한 자를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살아 남은 자들은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3. 인간의 양면성

 영화는 3가지의 다른 시간, 경험을 빠르게 전환시키면서 일종의 대조 효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좌초된 어선 속에서 벌어지는 연합군들의 생존경쟁 장면이었다. 이것이 더욱 선명하게 남는 이유는 바다 위의 인물들의 모습과 대비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바다 위 인물들은 자진해서 배를 몰아 덩케르크로 향한다. 중간에 구조한 병사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기도 하지만 애써 외면하고 결국 전쟁터로 향한다. 오로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군인들. 스스로 희생을 선택하고 자신의 생존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민간인. 이타적이면서 이기적인 인간의 양면성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더욱 뚜렷해 보였다. 물론... 바다 위 인물들이 이타심을 발휘한 내적 동기로는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 신문에 실리는 큰 일을 해보고자 하는 이기적인, 자신을 위한 쾌락일 수도 있다. 뭔가를 평가할 때는 대개 의도보다는 결과에 가중치를 두곤하니, 동기가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남을 도왔다면 이타적인 행위로 판단하고자 한다.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나 선악이 없다지만, 적어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그른 것. 스스로 희생을 선택하고 자신의 생존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을 옳은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 시각이고 역사가 흐르는 방향이라면 물론 그 과정 상에선 다양한 잡음이 있겠지만... 그렇게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