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야기

드라마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 - 삶에서 선택이 갖는 의미

BlueBurner 2017. 2. 1. 12:02

드라마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 - 삶에서 선택이 갖는 의미

추천할 만한 타임 슬립 장르물,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

나는 타임 슬립, 시간 여행 장르물을 좋아한다.
슈퍼 히어로 물이 주는 또 다른 간접 경험, 대리 만족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나도 과거로 돌아간다면?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막연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고, 때로는 겁을 먹게도 만들면서
지금 현재의 내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한편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와의 "시간"이라는 연결고리를 활용하여
그럴듯하게 서로 엮이고 엮이는,
각본 상 인과 관계가 주는 반전미, 스릴이 있기 때문이다.

생소한 소재일 수 있으나,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여
잘만 활용하면 같은 소재로도 다른 방향으로 엄청난 스토리들이 생겨나는 듯하다.

해외에서는 백투더퓨처, 프리퀀시, 이프온리,
나비효과, 더재킷, 데자뷰, 넥스트, 인터스텔라, 어바웃타임...

국내에서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동감, 시그널 등등...
이렇게 "타임 슬립"은 아주~ 아주 많은 컨텐츠들의 소재로 쓰이고 있지만
각각의 스토리들이 주는 감동은 조금씩 다르고, 질리지 않는다.

다음에 한 번, 내가 본 타임슬립 장르물에 대해
간단히 한 줄평으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


항상 "한국 종영 드라마 추천"을 검색해보면
등장하는 드라마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이번에 감상을 해봤다. 

※ 주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시간 여행을 제 3자 입장에서 지켜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한 가지다.

삶에서 『선택』이 갖는 의미

주인공인 박선우는 많은 선택을 한다.
우연히 형의 죽음을 맞닥 뜨리고, 한 개의 향을 얻고 피워보면서
시간 여행이 진짜임을 알게되고 "과거를 바꾸겠다"는 선택을 하고
진짜 향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아홉 개의 향을 얻고 나서는

"형을 살리겠다"는 선택,
"형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선택
"어머니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주겠다"는 선택
"아버지를 살리겠다"는 선택 등등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 많은 선택을 함으로써 현재에 개입한다.
하지만 매번 선택을 할 때마다 현재에선 얻는 것 보다, 잃는게 많아진다.

선택 =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

형을 얻음으로써 사랑하는 여자를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얻음으로써 형에 대한 사랑을 잃었다.
어머니에게 좋은 기억을 안겨줌으로써 목숨을 잃었다.

잃는 것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주인공은
포기를 하는 듯 하나,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을 때
남은 향을 또 피우게 된다.

대부분의 시간 여행 콘텐츠들은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과거에 개입했을 때, 현재는 항상 행복해지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불행해진다.

그 기저는,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을 얻으려는 "욕망"이
무엇을 잃는 것에서 오는 "상실감"보다 크기 때문인데,
이 두 개념 사이에 크기의 차이는 "희망"에서 오는 것 같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모든 시간 여행 영화, 드라마들은 위의 문장으로 한 줄 요약이 가능하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삶을 살면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모든 순간의 선택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

과거에 어떤 선택을 했든
현재의 나는 그런대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와중에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현재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 순간의 선택은 선택을 안할 수 없는
인간을 조롱하는 "강요"인 것 같다. (극 중에서 향이 자신을 조롱한다는 것처럼)

그렇다면 이렇게 "강요" 받는 선택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건가?
 이런걸 보면 삶은 이미 짜여진 운명이고
신의 장난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드라마 나인에서는 애초에 인간에게 선택이란 개념은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뭔가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여주면서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상실로만 이어지는게 아니라
현재의 행복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향은 9개로 한정되어 있고
9개의 마지막 향을 쓰면 미래로 돌아올 수 없다는 설정을 활용하여
주인공 박선우에게 과거 속에서의 죽음을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죽기 직전 어린 시아(민영)를 만나고,
친구 영훈에게 보내는 강력한 삶의 의지가 닮긴 메시지를 통해
과거 속 미래의 박선우가 무언가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애초에 인간에게 선택이란 강요받는 것으로 선택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주인공이 선택을 한 것처럼 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과거 속 미래의 박선우는 스스로 자살을 선택했어야 했다.
(마치 영화 나비효과의 감독판 결말이, 주인공이 탯줄로 목을 메 죽듯이)
하지만, 그런 결말은 너무나 비극적이다.

이 맥락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

2013년의 내가 1993년 과거에 가서 죽었다.
그럼 그건 미래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내가 알기만 하면 피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과거에서 죽었으니까 이미 확정된 결말일까...
어떻게 생각해?

어쨋든, 미래 속 박선우는 과거에 갇혀 죽음으로써
결혼식에 가지 못했고, 미래의 행복을 잃었다.
이렇게 미래 속 박선우의 우주는 소멸된다.

평행 우주라는 설이 있고, 일면 타당하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미래 속 박선우는 죽음으로써 본인의 우주를 잃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평행 우주인지 아닌지는 극이 주는 의미를 곱씹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과거 속의 박선우는 자연스럽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들로 자신만의 행복을 만들어 나간다.

과거 속 박선우와 미래 속 박선우는 똑같은 박선우라고 했을 때
미래 속 박선우의 행복을 잃음으로써
과거 속 박선우의 행복을 얻은 것이다.

향의 갯수가 제한 적이고, 마지막 향을 쓰고 과거에 갇힌 다는 것은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강요받고
그 선택의 결과값은 항상 무엇을 잃고, 얻음을 동반한다는 것을
의미해주는 것 같다.

그냥 그대로 돌아가서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면
미래의 최진철 말대로 공평하지 못하다.


결론적으로
극 중 박선우는 우리 삶에서 "선택"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이자,

극에서도 본인이 말했듯이 "향" 그 자체,
즉 "선택"이라는 개념을 의인화한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 결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 같지만
더 후의 미래에서 온 박선우든, 과거에서 계속 살던 박선우든
그 장면이 던져주는 것은 "선택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어느 시점의, 어떤 박선우든 자신의 형을 구한다는 선택을 했고
박선우=향은 시간 여행을 되풀이 한다.

그렇게 박선우가 향이자, 선택 그 자체라고 본다면 
그렇게 되풀이 되는 박선우의 인생을 불쌍하게 볼 필요는 없다.
그게 우리네 삶이니까.

우리네 삶은 극에서 굉장히 간단하게 귀결되는데
"믿고 싶은 판타지는 믿고, 사랑하는 여자는 사랑하면 된다."

동의한다.

자신의 삶 역시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서 시작되기 때문에
삶에서 선택은 그것이 강요든 아니든, 피할 길이 없다.

그리고 희망을 품고, 욕망하는 것, 사랑하는 것, 상실감을 느끼는 것 모두 본능이다.
그러니까 그냥,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