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룰
실시간 검색어에 "펜스룰"이라는 것이 떠서 무엇인가 찾아봤더니, 미국의 마이클 펜스 부통령의 말에서 따온 최근 미투 운동에 대처하기 위한 법칙이다. '아내 외 다른 여자와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 꽤 명확한 해결책으로 들린다.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가고 무죄 추정의 법칙 보다도 가해자의 진술에 의지하여 성폭력 혐의가 있는 자들은 사회에서 매장시켜버리는 최근의 분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성들의 발버둥이리라.
명확하고 확실한 해결책이지만 현명한 해결책은 아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며, 과거 남성들의 성폭력 범죄를 막기 위해 야한 동영상 시청을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만큼 우스운 해결책이다. 사회 존속을 위해 남성과 여성은 공존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공존 할 수 없다면 사회의 존속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결국 남자도, 여자도 이득을 볼 수 없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식의 문제 해결 방법은 최선의 해결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2011년에 쓰인 펜스 부통령 저서 속 한 마디가 이제와서 화제가 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도 남성들이 이에 공감하고 찬성하는 것에도 분명 이유가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성폭력 범죄를 판가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과거에 남성의 행위가 자신의 동의가 없었던 행위였음을 주장하면 물증이 없어도 일단 성폭력으로 규정지어버리는 사회의 분위기에서 남성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여성과 벽을 쌓고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매우 졸렬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대항하여 남성들의 이권을 다시 되찾고자, 모든 책임을 여성들에게 돌리고 자신들끼리 결집하기 위한 술수라고나 할까.
미투 운동의 뿌리는 페미니즘이다. 역사적으로 남성과 여성간의 불균형, 불평등은 계속 되어왔다. 미투 운동에서 고발되는 성폭력 사건들은 모두 남성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들이다. 원인은 무엇인가? 조직 내 남성 위주의 권력구조. 이것이 왜 성폭력을 유발하는가? 이런 불평등, 불균형적 환경에서 자라면서 갖춰진 비정상적인 관점. 우리 사회는 남성도 여성도 서로를 "사람"으로, 개인으로,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 진짜 극복해야할 것은 이런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십수년이 지난 후에 고발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꽃뱀 아니냐, 이제와서 그 남자를 매장시키기 위한 악의적인 고발 아니냐고들 한다. 이 사회에서 30년을 살아온 한 명의 남성으로서 감히 말하건대 만약 미투 피해자들이 꽃뱀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개인적인 공갈, 협박이 아니라 방송에 등장하고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하면서 고발하는 모든 행위들이 진짜 "악의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악의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남성이다.
이것은 무죄냐 유죄냐, 무고냐 성폭력이냐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 남성과 여성이 어떤 성적인 해프닝이 있었고 남성과 여성이 느꼈던 감정은 서로 달랐다. 당시에는 정말 서로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한 쪽은 정말 불쾌했는데도 불쾌하다고 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이 불쾌했었다고 고발하고 있다. 법률 상으로 진짜 무고일 수도 있다. 법률적인 판단으로 그 당시에 불쾌했는데도 불쾌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무언가 남기지 않았다면 무고, 무혐의로 판단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무고라고 하면 그냥 끝나는 문제인가? 법률적으로 무고라고 해도 왜 여성들이 그렇게 처절하게 고발할 수 밖에 없었는지, 왜 그런 악의를 가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원인은 앞서 말한 비정상적인 관점이다.
나는 남성들 스스로가 과오, 비정상적인 관점을 인정하고 반성할 기회를 펜스룰이 빼앗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여성을 사람으로 보기 보다 여성으로만 보려는 비정상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남성들 끼리 그룹을 지어 그 뒤에 숨는 것이다. 모든 책임을 여성들에게 돌리고 자신이 비정상적인 관점을 돌이켜볼 틈도 없이 남성들끼리 결집하고 여성들을 배척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 갈라설게 아니라 우리가 밝혀내야 할 것은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누가 누구를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다.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해보자. 우리는 여성을 주제로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 남성들도 남성들 안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진짜 필요한 것은 펜스룰에 숨어서 남성들끼리 뭉칠게 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의 내부 고발과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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