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뒤늦게 영화 "범죄도시"를 봤습니다. 2004년 가리봉동 일대에서 벌어진 조선족 폭력사건으로 금천경살서에서 20~30명의 조선족을 구속시켰던 실제 사건을 영화화 했더군요. 윤계상 씨, 마동석 씨 주연으로 아주 오락성있게, 적절히 자극적이면서 코믹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동석 씨는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다소 험악한 외모와 상반된 코믹 연기를 보여줬고, 윤계상 씨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외모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인무도한 조선족 폭력배 두목 역을 맡아 무서운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는 모두 만족스러웠고 덕분에 손에 땀을 쥐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러닝타임 내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재미있군" 이라는 생각 이외에 영화관을 나서면서 드는 1차적인 생각은 "조선족 무섭네" 였습니다. 그간 다양한 한국 영화에서 조선족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팍 떠오르는 영화는 나홍진 감독, 하정우, 김윤석 주연의 "황해" 였습니다. 그 외에 다양한 폭력을 소재로 한 장면들에서 조선족은 자주 등장합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흔적 없이 타겟을 제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며 드는 2차적인 생각은 "조선족을 무섭게 만드는 미디어도 무섭네" 였습니다.
저는 조선족으로부터 피해를 받은 적도 없고, 주위의 누구도 조선족으로부터 피해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사건들의 경우 내국인에 의한 강력범죄보다도 외국인에 의한 강력범죄가 보도 시에 더 강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해합니다. 항상 "다름"이라는 미지의 영역은 두려움으로 곧 잘 바뀌곤 하며, 사람들을 자극하고 시선을 끌기에 두려움이나 공포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나와, 우리와는 다른 어떤 존재들을 향한 두려움을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 본성이라고 한다면 그에 따르는 편견이나 차별과 같은 폭력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과거에는 더욱 본성에 따라 직접적으로 노예로 부리거나 직접적인 폭력이 가해졌다면 현대에 와서 목격되는 편견이나 차별들은 상대적으로 "간접적"인 폭력으로... 인류가 주창하는 근대 이성의 힘으로 조금이나마 폭력적 본성이 완화가 된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방법만 조금 달라졌을 뿐, 그것이 대상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는 "폭력"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편견과 차별은 미디어에서 자극하고, 인간 본성에서 발현되는 공포를 먹고 자라나서 노골적인 억압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제노포비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조선족에 대한 관심과 조명은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존재'로 타자화시키고 공존의 대상이기 보다는 힘으로 억압과 폭력의 대상으로 전락시킵니다. 지금의 상태가 별 문제의식 없이 계속된다면 조선족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인들의 범죄도 점차 발생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밤에는 영화 주토피아를 봤습니다. 범죄도시를 보고 이것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고 그 전에 다운받아 놓고 미뤄두고 있다가 갑자기 보고싶어져서 봤습니다. 근데 두 영화를 보고나서 위의 생각과 더불어 많은 생각들이 번져갔습니다. 저는 요새 이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누군가가 진리로 나를 이끌고 있는 듯한 느낌.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을 보고난 후에는 중고 서점에서 정말 우연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한 권을 읽었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작지만 하나씩 깨달음을 얻어가는 게 너무나 즐겁습니다. 어쨌든 영화 주토피아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간의 다름, 이 다름에서 생겨나는 편견과 차별 그리고 공포. 이 공포를 이용해 다른 한 집단을 억압하려는 시도들. 인간 사회를 동물에 빗대어 정말 잘 표현했고 그런 삶 안에서 주디라는 토끼 경찰관을 통해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할 지 말해줍니다.
문제를 해결할 때 고려해야할 사항은 우선은 '고칠 수 있는 문제와 고칠 수 없는 문제가 무엇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것"은 관점에 따라서 폭력을 유발하는 문제점으로 규정할 수 있겠으나, 이를 문제점으로 규정해버리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것은 없애버린다"는 폭력적인 해결책밖에 나올 수 없습니다. 조선족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다양한 편견과 차별 문제들은 여기서 나옵니다. 우리는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고 틀림으로 규정하여 억압합니다. 여기에는 다름으로부터 비롯되는 공포가 주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주토피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육식동물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초식동물들의 결집을 유도합니다. 공포는 사고의 범위를 제한함으로써 가장 쉽고 직관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합니다. 폭력적으로 변한 것은 "일부"의 육식동물일 뿐이었고, 그것은 비정상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며 주토피아에서는 누구나 원하는 무엇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영화에서 주디 홉스가 얘기했듯이, 우리가 맞서야할 것은 육식동물(우리와 다른,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부 육식동물로부터 비롯된 막연한 이미지(그들은 폭력적이다)를 다른 다수의 육식동물에게 적용시키려는 "공포"입니다. 일부 육식동물의 비정상적인 변화와 일부 조선족의 범죄는 그것대로 철저히 관리해야 하지만, 그 외의 정상적인 육식동물과 평범한 조선족은 그들대로 편견 없이 바라봐야 합니다. 공포와 두려움에 굴복당하여 전체를 비정상적이라고 관리하고 없애야할 대상이라고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듯 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항상 영화나 방송, 뉴스, 신문을 볼 때 그들의 화용론에 낚여선 안되겠습니다. "조선족은 무섭다" 이런 생각은 낚인 겁니다. 영화에서 보여준 무자비한 장면들에 낚여, 공포에 굴복하여 한국땅에서 열심히 살아가고자하는 조선족들을 매도해선 안됩니다. 가능성의 여부는 제쳐두고 인간의 본능적 공포를 비로소 극복할 수 있을때, "주토피아"처럼 모든 동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인간들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유토피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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