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영화 "조커" - 윤리의 출발점

BlueBurner 2020. 1. 8. 00:03

영화 조커는 개봉하고 얼마되지 않아 바로 봤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를 워낙 재밌게 봤던지라, 조커의 예고편을 처음 유튜브에서 봤을 때부터 기대했다. 거기다 주연이 Her의 주인공인 호아킨 피닉스라니! 기대는 배가 됐다.

영화는 빈민가에서 광대 일을 하던 아서 플렉이라는 남성이 어떻게 최악의 범죄자 조커가 되어가는지를 그린다. 물론 범죄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웃으면서 보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당신은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아" 식의 대사를 던질 때, 살인을 저지르고 춤사위에 빠질 때, 계단을 내려오며 춤을 출 때, 토크쇼에 첫 등장하며 상상으로 연습하던 등장을 실현할 때, 진행자와 대담을 나눌 때, 마지막 엔딩까지.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았다.

"농담"은 대화의 상대와 주체인 나, 모두가 즐겁자고 던지는 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떤 행위든, 말이든, 콘텐츠든 이것이 "재미있다"라고 느끼는 감정은 항상 주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아서 플렉의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나오는 것을 질병이라고 여기는 것은 조금 의아하다. 한 개인이 언제 웃어야 함을, 사회는 무엇을 기준으로 정의하는가? 아서 플렉이 어느 코미디쇼에 방문해 다른 코미디언을 관찰하며 "성적인 농담은 반응이 좋다"라는 메모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나도 어느 정도 주인공에게 슬픈 연민을 느꼈다.

학교를 다닐 때, 선배로서 신입생들과 한 자리에 있을 때면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책임은 항상 선배에게 우선했었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면 "재미"있어야했다. 조 단위로 그룹지어 2박 정도 행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조의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으면 행사 자체가 시시껄렁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많았다. 조장이자 선배인 나는 부담감이 매우 컸고, 부담감을 떨쳐내고자 각종 개그 프로의 유행어나 토크쇼 등을 보면서 대화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 중에서도 MC 신동엽의 개그 코드를 유심히 관찰했었고,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의 야한 농담이 좋은(?) 반응이 있었다. 당시에 내심 유머가 통하는게 기뻤으면서, 내가 왜 이런 부담감을 느껴야 하는 건지, 우리 과가 개그 과인지 분노와 혼돈을 느낀 적이 있었다. (성적인 농담을 남발한 것에 대해선 뼈저리게 반성한다.)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어가는 과정은 우리가 익히 마블 등의 영화에서 봤던 한 영웅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인공의 운명이 악당 또는 영웅이 되기로 미리 결정돼있었던 것 마냥 누구에게도 쉽게 일어나기 어려운 "우연"이 연속적으로, 논리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구조는 똑같지만 방향은 달랐다. 영웅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긍정적이고 권선징악의 희극이라 치명적인 교훈이나 울림, 카타르시스가 비극의 그것보다는 덜하다. 조커의 이야기는 잘 꾸며진 비극이다. 악당의 아이콘인 조커의 기원을 다룸으로써 지금껏 희극에 익숙했던 대중들에게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무엇인지 효과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다만, 비극의 카타르시스나 공감만을 느끼고 끝내면 안 된다.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커가 되겠다는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함을 인지해야 한다. 그의 품에는 우연히 총이 있었고 하필이면 그날 직장에서 쫓겨나면서, 그 동안 사회의 멸시를 받아 분노가 두텁게 쌓여있던 상태에서 금융맨들에게 조롱과 폭행을 당했다. 그래서 전부 죽여버렸다. 어떤 식으로든 타인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기 때문에 아서 플렉의 불쌍함과 우울함에 아무리 공감하더라도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그의 행동과 스토리에 동의하고 정당성을 부여해선 안 된다. 나는 이것이 "윤리"라고 생각하며 다수 평론가나 언론 등에서 이 영화가 무섭다고 표현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토크쇼로 향하는 조커는 우연히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고, 체포되어 이송 중에도 자신이 촉발한 폭동에 의해 우연히 풀려고 종국엔 범죄자들의 영웅 취급을 받는다. 재미도 정의도 모두 주관적이라면 이 상황에서 조커는 영웅인가 악당인가? 아버지에게 아들 대접도 못받고 사회에서 괄시만 받으며 더럽게 안풀리던 인생은 비극이었다.  기분 내키는대로 죽이고 윤리고 도덕이고 무시했더니 영웅 대접을 받으며 인생이 개같은 코미디, 희극이 돼버렸다.

영화에 등장했던 모던 타임즈,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오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