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일관 대표가 가수 최시원 씨 가족이 기르는 개에게 물리고, 이후 감염으로 세상을 떠난 사고가 있었습니다. 여론은 뜨겁습니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은 안락사해도 마땅하다 vs 그들도 생명이다. 함부로 죽여선 안된다. 나는 후자에 찬성하는 쪽입니다. 해당 사안의 문제는 사람을 문 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사람을 물어와도 강하게 교육을 시키지 않은 주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든 위험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최근의 영화 범죄도시에서도 등장했던 장면들을 떠올려 봅니다. 소화기, 식칼 등... 평상 시에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위험하게 사용할 수도 있는 것들입니다. 개를 물건에 비유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교육을 잘 시켜왔다면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였습니다. 귀책은 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 다룬 주인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은 주인에게도 귀책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어쨋든 개가 사람을 물어죽인것도 사실이다. 그 개를 그대로 나둬도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중함을 논합니다. 그래도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다.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개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님에도, 순전히 운이 좋아 어쩌다 인간으로 태어나 문명 속에서 삶을 이뤄감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못한 문명 속의 생명을 우리는 쉽게 차별하곤 합니다. 어떤 생명으로 태어나서 살아갈지 아무도 결정을 할 수 없는데, 이미 태어난 후에 어떤 생명이 더 중요한지 우열을 과연 누가 가릴 수 있을까요? 가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랜덤인데.
물론, 유한한 자연환경 속에서 한 종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종을 잡아먹거나, 이용한다는 것은 불가피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구의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리고 그 먹이사슬 위에 인간이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잘 구별해야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사실과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 생존이나 만족을 위해 개, 돼지, 소 등 동물을 잡아 먹는 것은 어쩔수 없는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생존의 문제를 벗어나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생명이 우리보다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고기로 잡아 먹는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학대하거나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고통을 무시하거나 생명을 경시하면 안되듯이 그들의 고통을 무시하고 생명을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고통을 통해서 우리가 삶을 지속해 나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고통을 무시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존엄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인간들끼리 곡해하고 남용해선 안됩니다. 만약 개와 사람이 함께 물에 빠져 있고 둘 중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사람을 구할 것입니다. 이 상황을 듣고 나서 "역시 인간이 동물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존엄성에 대한 오해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개를 구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데에서 발현되는 것입니다.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동물이 아닌 인간을 우선했다고 해서 인간이 존엄한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다는 상황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반성하거나 용서하는 것. 인간의 존엄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존엄하고, 인간의 생명이 동물의 생명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물어 죽인 개는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이나 존엄성에 대한 오해이자 인간 스스로의 자만입니다.
첫째, 생명간에 무엇이 더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는 우리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중요함은 어떤 생명체든 동등합니다. 인간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인간은 존엄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인간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을 인간들끼리 합의해서 오랜 세월 살아왔기 때문에 발생하는 착각이자 오만입니다.
둘째, 생명간 중요성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사람을 물어 죽였다는 '사실'과 그 개가 죽어야 마땅하다는 '당위'는 서로 연관성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정글에서 호랑이 새끼를 실수로 죽였을 때 어미가 나타나 복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동물들은 그렇게 합니다. 상황의 어쩔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반성하고 용서하지 못하니까요. 그러나 인간은 할 수 있습니다. 개가 사람을 물어 죽인 것이 인간의 실수로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는 전체적 상황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 개를 용서하고 인간들은 서로 반성하면서 앞으로 다른 반려견을 어떻게 교육해야할 지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의 우월함에서 나온다는 것은 존엄성에 대한 오해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 스스로 우월함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절제하는 것에서 발현됩니다.
사람을 물어 죽인 개가 잘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동물을 자신들의 수단으로 이용하는데서 오는 부작용임을 스스로 인정을 하고, 반성을 해야 합니다. 존엄성을 핑계로, 해당 문제의 귀책사유를 동물에게 돌리며 생명의 중함을 논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존엄성을 깎아 먹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조금 더 분명하게 존엄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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